패션칼럼 2014-03-06

안나 윈투어가 둘째 줄에 앉은 이유

세계 패션을 움직이는 실력자인 안나 윈투어가 발렌티노 컬렉션에서 그녀만의 고정석인 앞줄이 아닌 두번째 줄에서 패션쇼를 보는 장면이 공개되면서 패션쇼 자리 배정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발상전환이 필요하다는 여론이다.



보통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쇼에서 맨 앞줄 자리는 업계에서의 위상을 말해주는 무언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만약 패션쇼의 앞줄에 앉지 못하면 패션계에서 그리 비중 있는 인사가 아니라는 의미로도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사를 진행하는 디자이너나 주최 측 입장에서는 턱없이 부족한 한정된 자리 때문에 매 시즌 골머리를 앓는다.  


이번 2014 가을/겨울 파리 패션 위크 기간 중 발레티노 컬렉션이 열린 지난 3월 4일(현지시간) 재미있는 사진 한 장 공개되어 세계 패션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바로 세계적인 패션계 인사인 미국판 <보그> 편집장 안나 윈투어가 그 주인공이었다. 위의 인스타그램 사진처럼 동료인 토니 굿맨과 그레이스 쿠딩턴, 그리고 자매지 <보그틴>의 에이미 애스틀리가 맨 앞줄에서 패션쇼를 본 반면 안나 윈투어는 두 번째 줄에서 패션쇼를 보는 모습이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사진이 공개되자 호사가들은 그 진위에 촉각을 세웠다.


지금까지 안나 윈투어가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앞줄에서도 가장 좋은 자리에 앉아 패션쇼를 보는 것은 거의 불문율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녀가 패션쇼 장에 나타나는 시간이 바로 쇼가 시작되는 시간이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앞줄에 안나 윈투어를 모시는(?) 것은 디자이너에게는 영광이자 세계적인 패션 파워 우먼에 대한 당연한 의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의 에디터 미날 미스티가 "발렌티노의 혼란스러운 자리 배정 때문에 안나 윈투어가 둘째 줄에 앉았다"는 멘트와 함께 올린 이 한 장의 사진으로 패션계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얼마 전에 끝난 2014 가을/겨울  뉴욕 패션 위크에서 도나 카란이 패션쇼 피날레에서 눈물을 훔치자 그녀와 도나 카란의 최대 주주인 LVMH와의 불화설을 보태 그녀가 곧 사임할 것이라는 뜬금없는 소문이 나와 이목이 집중되기도 했었다. 결국 브랜드 창립 30주년을 맞은 디자이너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린 것으로 밝혀져 결국 소문은 소문으로 끝났다.  


인터넷에 처음 사진이 공개되자 안나 윈투어가 자신의 패션쇼 공식 지정석인 앞줄에서 밀려난 이유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나왔고, 그녀의 자리를 두 번째 줄로 배정한 발렌티노의 의도 대한 궁금증으로 확대되었다. 그러나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그 배경이 밝혀졌다. 사연인즉슨 이번 시즌 발렌티노 패션쇼에서는 취재진이 많이 몰려 미국 잡지의 자리 배정에 숫자 제한을 두었는데 그 바람에 일어난 해프닝이라고 한다. 즉 4명만 앞줄 좌석에 배정되었기 때문에 <보그> 객원 에디터인 사라 무어는 앞 줄 자리를 배정받지 못했던 것. 이에 안나 윈투어는 자신의 자리를 온라인 보그닷컴의 패션쇼 리뷰 기사를 쓰는 사라 무어(사진에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에게 양보하고 자신은 두 번째 줄에 앉은 것이라고 한다.


사실 그녀를 모델로 한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나 그녀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셉템버 이슈>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번의 자리 해프닝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일지도 모른다. 깐깐하고 자존심 강한 ‘얼음 공주’ 안나 윈투어에게 두 번째 줄 자리 배정은 어쩌면 모욕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은 달랐다. 안나 윈투어 편집장은 일하는 에디터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양보했고 더 중요한 점은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한 발렌티노 측의 불가피한 자리 배정에 기꺼이 따라 주었다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자존심 강하고 콧대높은 캐릭터였다면 뉴욕에서 파리까지 날아왔는데 어떻게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며 동료 기자들을 데리고 퇴장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 안나 윈투어가 발렌티노 패션쇼의 두 번째 줄에 앉아서 쇼를 보는 장면을 두고 패션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좀 과장된 해석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언뜻 주최 측의 자리 배정 잘못으로 인한 명백한 의전 실수로도 볼 수 있는 문제였기에 주최 측의 안내에 따라 두 번째 줄에 앉은 것은 자신의 지위나 파워보다는 공정한 자리 배정에 협조해준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패션쇼장에서 자리 때문에 얼굴 붉히는 일이 많은지라 '자리 배정의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안나 윈투어의 행동은 신선한 충격이다. 


패션쇼의 자리 배정 문제는 비단 해외 컬렉션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는 아니다. 보통 패션쇼장 앞자리를 선호하는 심리 때문에 늘 앞 줄 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몇몇 디자이너들은 연예인들을 둘째 줄까지 배정하는 바람에 정작 취재와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프레스와 바이어들이 세 번째 줄로 밀려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자리마자 이름표를 달아 지정좌석제를 운영해 보기도 하지만 해외 컬렉션처럼 출석율이 높지 않기 때문에 그다지 효과는 없어 보인다.


문제는 자리 배정의 공정성과 원칙의 준수다. 사전에 자리 배정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갑자기 찾아온 VIP 불청객(?)들 때문에 없는 자리를 갑자기 만들어야 하는 주최 측의 난감함은 당해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고육지책으로 뒷줄 자리를 권해보지만 상당수의 불청객들은 자신들이 제대로 예우를 못 받는다고 생각하는지 화를 내는 경우가 다반사다. 특히 셀렙들의 경우 굳이 코디와 매니저들까지 앞자리에 같이 앉아서 쇼를 볼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외국의 경우 앞줄에 앉은 셀렙들 옆에 코디나 매니저가 나란히 앉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셀렙들과 불청객 때문에 뒷줄로 밀려난 바이어와 프레스들은 기분이 상해 쇼를 보지 않고 그냥 나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지난 시즌 여의도에서 열린 2014 봄/여름 서울 패션 위크에서 서울시는 표를 판매하지 않고 대신 지정좌석제를 실시했다. 혼잡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쇼 장 전면을 기준으로 한쪽은 디자이너측이, 한쪽은 서울시와 주최 측이 자리를 채우기로 했지만 결국 많은 초청 객들(특히 서울시 초대 인사)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 몇몇 쇼는 자리가 듬성듬성 비어있는 상태에서 쇼가 열려 행사 후 주최 측이 디자이너들의 원망을 듣기도 했다.


티켓 판매의 경우도 그렇다. 사실 패션쇼 티켓을 파는 것은 서울 컬렉션이 유일하다. 티켓 구매자들은 대부분 학생들이다. 운 좋게 표를 산다고 하더라고 이미 좌석은 초청 인사들로  만원이라 표를 사고도 까치발로 쇼를 봐야했다. 이를 두고 주최 측이 학생들의 코 묻은 돈을 갈취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티켓을 판매하지 않자 학생들의 현장 교육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또 다른 소리가 나왔다. 결국 학생들을 위해 교수들은 표구하는 앵벌이로 전락하고 비매품인 티켓은 사이버 장터에서 고가로 거래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더 비싼 돈을 주고 암표를 사야하는 희생양들은 다시 학생들이 된 셈이다. 


안나 윈투어의 앞줄 자리 양보 기사를 보면서 새삼 컬렉션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기사를 쓰는 에디터를 위해 기꺼이 자리를 양보한 안나 윈투어처럼 우리 역시 행사 취지에 맞게 바이어와 프레스를 배려하는 자리 배정이 이루어 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서울 컬렉션이 옷 구경을 하는 백화점 이벤트도, 그렇다고 한류 스타들을 가까이에서 보려는 관광객들의 투어용 이벤트가 아니라면 말이다. 모든 일정이 늦어버려 그야말로 번개에 콩 볶듯이 진행되는 이번 2014 가을/겨울 서울 컬렉션 역시 자리 배정 때문에 또다시 쇼 장이 시끄러울 것으로 보인다. 아직 티켓 판매 여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지정좌석제를 시행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결국 공정하고 효율적인 패션쇼장 자리 배정의 문제는 운영의 묘를 어떻게 살리느냐에 달려있다. 주객이 전도된다면 서울 패션 위크는 셀럽들이나 고객들을 위한 팬 서비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글 유재부 패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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