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2015-05-04

샤넬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었거나 몰랐던 26가지 놀라운 진실

20세기의 여성 패션의 혁신을 선도한 프랑스의 패션 디자이너 가브리엘 코코 샤넬. 하지만 나치에 협력한 사실과 현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가 독일 출신아라는 사실은 아이러너컬한 패션사가 아닐 수 없다. 샤넬의 패션쇼가 서울에서 열리는 지금 이 시점에서 일제 강점 35년을 보내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샤넬의 공과를 바로 보기 위한 미니 스토리를 소개한다.




럭셔리 세계에서 알파벳 C자가 서로 교차하는 상징적인 샤넬 로고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샤넬이 사치 욕망을 부추기는 대표적인 럭셔리 브랜드가 되기전에 샤넬은 파리의 여성용 모자를 만드는 모데스트 밀리너리 (modest millinery shop) 숍( modest millinery shop)에 불과했다.


우리에게 코코 샤넬로 알려진 가브리엘 보네르 샤넬(Gabrielle Bonheur Chanel)은 1909년 그녀의 비즈니스를 시작했을 때 패션 역사의 과정을 변화시켰다. 그녀가 세기가 바뀌는 시기부터 처음 인기가 얻으면서 유명해졌다.


샤넬은 1883년 프랑스 남서부의 소뮈르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어머니와 사별하고 아버지에 의해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에 맡겨졌다. 보육원 시절 직업 교육의 일환으로 바느질을 배웠고, 이렇게 습득한 바느질 기술은 훗날 샤넬이 패션업을 시작해 그녀의 패션 감각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샤넬은 나중에 보육원을 나와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는데, 이때부터 샤넬 로고에 사용된 두 개의 ‘C’의 출처인 ‘코코(Coco)’라는 별칭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샤넬이 거짓말을 통해 숨기고자 했던 그녀의 이러한 불우한 성장 과정과 틀에 매인 교육의 부재는, 그녀가 기존의 관습을 깨고 시대적 변화의 흐름에 맞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제안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럼 샤넬은 어떻게 오늘날 파워하우스가 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우리는 샤넬을 특별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기 위해 브랜드의 오랜 역사를 되돌아 보았다. 코코 샤넬이 한 때 "나는 패션을 하지 않는다. 나는 패션이다(I don't do fashion, I am fashion)"라고 말했기 때문에 여성의 패션을 영원히 변화시킨 브랜드의 미니 스토리를 통해 패션에 있어 헤리티지와 레전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자.


1. 1909년 코코 샤넬 밀리너리로 자신의 매장 오픈
 18세에 수녀원을 떠난 코코 샤넬은 뮤직 홀 가수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안 테일러링 숍에서 일했다. 마침내 그녀는 1909년 여성의 모자를 만드는 밀리너리 디자이너로 자신의 가게를 오픈했다. 




2. 1910년, 코코 샤넬은 파리 캉봉 거리에 자신의 매장 오픈

코코샤넬은 1910년 파리 캉봉거리(Rue Cambon)에 '샤넬모드'라는 여성용 모자 가게를 열었다.그러나 임대 건물은 빌딩 안에 이미 쿠틔르 매장이 입점에 있었기 때문에 쿠틔르 드레스 판매가 원래 금지되어 있었다. 결국 1918년 현재 샤넬 매장이 있는 캉봉거리 31번지로 매장을 이전하게 된다.




3. 1921년, 샤넬의 상징적 아이템 '샤넬 넘버 5' 향수 탄생

코코 샤넬은 "여성의 향기가 담긴 여성 향수"를 원했다고 전해진다. 상징적인 향수 병의 디이이몬드 스토퍼는 파리의 방동 광장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 향수는 디자이너의 이름이 들어간 최초의 향수로 알려져 있다. 또한, ‘5’라는 숫자가 들어간 이름과 단순한 용기 디자인은 시대를 앞선 모던함을 보여주었다.





4. 1925년, 코코 샤넬 여성을 위한 트위드 소개

1924년, 코코 샤넬은 웨스트민스터 공작으로 부터 트위드 스포츠웨어를 착용한 후 트위드 소재를 생산하기 위해 스코틀랜드 공장과 함께 일을 하기 시작했다. 코코 샤넬의 단순하고 활동적인 디자인은 애인이었던 웨스트민스터 공작과 그 주변 친구들이 착용했던 스포츠웨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 흔적은 남성 스포츠웨어의 일부인 스웨터, 카디건, 배기 팬츠 디자인의 차용, 편물이나 영국산 트위드와 같은 활동하기 편안하고 실용적인 소재 사용에서 찾을 수 있다. 그녀의 디자인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1920년대 중반에 이미 유명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5. 1926년, 코코 샤넬 리틀 블랙 드레스 창조

코코 샤넬의 디자인 스케치가 1926년 미국판 <보그>에 소개되었다. 당시 잡지에서는 이 미니 블랙 드레스를  미래적인 형태로 소개되었다. 결국 여성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LBD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리틀 블랙 드레스는 샤넬 디자인의 단순미와 기능성의 극치를 가장 잘 보여준다. 당시 여성의 검정 의상은 상복이나 점원들의 의상으로 착용되었다. 하지만 샤넬은 산업혁명 이후 남성복에서 일찌감치 댄디(dandy)들에 의해 확립된 검은색의 우아한 엘레강스를 최고급 여성복에 도입하는 획기적인 시도했다.




6. 그리고 여성의 슈트를 개척하다

보통 여성용 슈트는 투피스나 쓰리피스로 구성했고 1910년대와 1920년대 동안 여성을 위한 머스트 바이 아이템이 되었다. 코코 샤넬은 산업 발달에 의한 기능성의 중요성 부각은 물론, 여성의 학력 향상, 직업여성 수와 경제력 증가, 여성의 스포츠 참여 기회 확대 등으로 나타나는 여성 라이프스타일의 모던한 변화를 읽어내, 장식성을 배제한 활동적인 의상을 제안했다.





7. 자신이 시조인 투톤 슈즈와 골드체인 핸드백의 대중화 

특히 핸드백을 비롯한 그녀가 만든 액세서리는 1950년대 브랜드가 부활하는 동안 인기를 얻었다. 퀼팅 백은 1955년 2월에 처음 출시되었다. 샤넬은 다양한 액세서리 디자인을 통해 그녀의 단순한 의상 디자인에 화려함을 부여했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이전 의상 자체에 나타난 화려함이 샤넬의 디자인에서는 단순한 의상과 화려한 액세서리로 분리되어 나타나, 다양한 조합에 의한 장식이 가능하도록 재배열되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8. 반면 클래식 액세서리는 규칙을 지속하다

2013 봄/여름 샤넬 컬렉션에 선보인 샤넬 훌라후프 백. 만약 이 백에 투자하고 싶은 독자를 위해 24cm의 미니 훌라후프 백 가격은 2,400달러(약 258만원)라고.





9. 코코 샤넬이 질투한 그녀, 엘사 스키아파렐리

1930년대에 코코 샤넬은 이탈리아 디자이너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다. 둘은 서로 지향하는 스타일이 달랐는데, 샤넬은 비교적 값비싸고 우아한 실용적 스타일임에 반해 스키아파렐리는 초현실주의 같은 개성적이고 대담한 표현을 좋아했다. 이러한 스키아페렐리에게 샤넬은 "옷이난 만드는 이탈리안 아티스트'리고 폄하했고 스키아파렐리는 샤넬을 두고 "그저 모자 만드는 여자'라고 폄하하기도 했다.




10.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샤넬은 자신의 살롱 문 닫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진행되는 동안 코코 샤넬은 리츠 호텔에 살고 있었다. 그것은 나중에 파리의 나치 사령부 본부가 된다. 샤넬은 1939년 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함께 자신의 살롱 문을 닫았다. 파리가 나치의 손에 넘어간 상황에서 샤넬은 독일군 장교와 교제했고, 나치에 적극 협력해 그녀의 옛 애인인 웨스트민스터 공작의 친구인 처칠 수상의 마음을 움직이려 했던 공작에 적극 가담했다. 종전 후 샤넬의 이러한 행위가 밝혀지면서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샤넬은 배신자로 낙인 찍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스위스에서 망명을 떠났다. 망명후 돌아와 다시 리츠 호텔에서 살다가 리츠 호텔에서 사망했기 때문에 무려 1937년부터 37년간 리츠 호텔에 장기투숙한 셈이다.





11. 1983년, 칼 라거펠트를 샤넬 크리에이티비 디렉터로 영입
독일 출신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끌로에서의 자신의 계약을 취소하고, 연봉 100만달러를 받기로 하고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가게된다. 1983년 이후 라거펠트의 지휘 아래 샤넬 본래의 스타일에 새로운 요소를 접목해 가며 끊임없는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12. 칼 라거펠트의 고양이 슈페트 약 36억 수입 올려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의 애묘로 알려진 슈페트가 지난해 300만 유료(약 36억2천만원)를 벌었다고 한다. 디자이너와 함께 동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사랑스러운 모델은 심지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 동물 중 유일한 SNS 계정 소유자가 아닐까 한다? 





13. 칼 & 슈페트, 스트리트 아티스트에게 포착되다

뉴욕에서 활동중인 스트리트 아티스트  브래들리 테오도로가 뉴욕에서 칼 라거 펠트와 애묘 슈페트가 동시에 등장하는 이 직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14. 매년, 샤넬의 공방 컬렉션은 샤넬 아틀리에에서 작업 

매년 12월에 열리는 샤넬의 공방 컬렉션인 메티에 다르(Metiers d'Art)는 아틀리에 작업을 통해 탄생한다. 아름다운 디테일의 컬렉션은 가죽에서 부터 레이스까지 모든 것을 직접 만드는 샤넬 공방 장인들의 재능을 강조한다. 특정 도시로 날아가 샤넬 공방의 예술성을 찬미하고 깃터르 코사지, 모자, 신발, 장갑 장인들의 재능에 경의를 표하는 컬렉션이다.





15. 2014년, 잘츠부르그에서 열린 오트 아틀리에 쇼

2014년 샤넬의 공방 컬렉션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그의  레오폴드스크론 성에서 열렸다. 샤넬의 컨셉은 한마디로 'Fashion Fairy Tale' 마치 동화속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패션쇼를 선보였다. 패션쇼 장소인 레오폴드스크론 성은 아주 유명한 고전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16. 2013년, 텍사스에서 열린 '샤넬-댈러스' 패션 쇼

코코 샤넬은 지난 1957년 125명의 사절단과 비행기를 타고 텍사스로 간적이 있다. 바로 패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니만 마커스 상을 수상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57년이 지난 2013년 12월, 칼 라거펠트가 텍사스 중심부의 아르데코 건축물로 된 댈러스 페어 파크를 건초가 쌓인 헛간으로 개조해 공방 컬렉션을 개최했다. 샤넬과 컨트리풍의 절묘한 만남을 보여주었다. 라거펠트에 의해 평범한 카우보이가 아니라 카우보이가 아주 섬세하게 재해석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17. 2012년, 스코트랜드에서 열린 공방 컬렉션

2002년부터 샤넬 하우스 장인들의 특별한 솜씨를 보여주기 위한 공방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는 칼 라거펠트는 2012년 공방 컬렉션의 장소로 샤넬의 유산을 풍부히 간직하고 있으며 오늘날 샤넬에 핵심적인 상징인 트위드와 캐쉬미어로 유명한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를 선택했다. 클래식하지만 펑크한 이미지로 가득한 스코트랜드 공방 컬렉션은 다양한 체크 패턴과 니트, 트위드로 쇼의 분위기를 한껏 업시켰다.





18. 칼 라거펠트는 장관을 연출하는 패션 쇼로 유명

파리 그랑팔레에 마련된 가상 거리 '샤넬대로'에서 진행된 '2015 봄/여름 샤넬 컬렉션'을 통해 칼 라거펠트는 아주 정치적(?)인 패션쇼를 선보였다. 패션쇼에는 지젤 번천을 비롯, 카라 델레바인, 조지아 메이 재거, 켄달 제너 등 톱모델들이 피켓과 메가폰을 들고 구호를 외치면서 대거 등장했다. 물론 샤넬 수석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도 동참했다. 이번 패션쇼는 여권 신장을 주제로 모델들은 여성의 자유와 페미니즘 관련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거리에서 시위를 하는 것처럼 런웨이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19. 2013년 가을/겨울 오트 쿠틔르 쇼의 미래적인 풍경

웅장한 무대와 객석을 갖춘 극장을 그대로 재현한 그랑팔레의 2013 가을/겨울 샤넬 오트 쿠튀르 컬렉션 세트는 미래적인 모습을 물씬 풍겼다. 쇼 시작 전부터 잿빛 휘장 너머에 무언가 분명 있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막상 커튼이 열리고 쇼가 시작되자, 그 너머에 나타난 '신세계'의 모스봐 뉴월드에서 걸어나오는 여인들의 룩에 모두들 입이 벌어지는 서프라이즈였다. 19세기 말 낡은 극장의 막이 열라고 펼쳐진 세계는 지금보다 20년쯤 앞선 듯한 2033년의 어느날, 극동 지역의 미래적인 신도시였다.





20. 2012 봄/여름 샤넬 컬렉션의 바닷속 풍경

마치 바닷속을 그대로 옮겨 온 듯한 2012 봄/여름 샤넬 컬렉션은 화사하고 가벼운 컬러와 반짝이는 소재들로 마치 빛나는 조개들과 수초들을 보는 듯하 분위기를 연출했다. 바닷속 여행을 통해 6개월 뒤에 준비된 시원한 여름으로의 여행을 관객들에게 선물하는 듯 했다.     





21. 2014 봄/여름 쇼를 위한 샤넬 테마의 아트 뮤지엄

아트와 패션의 만남을 갤러리 같은 무대로 구현한 2014 봄/여름 샤넬 컬렉션. 패션과 예술의 경계를 허문 칼 라거펠트는 쇼장 자체를 모마(MoMa) 뺨치는 모던 아트 갤러리로 꾸며 놓고 물감 팔레트를 연상시키는 드레스와 스케치 북 모양의 클러치를 선보였다.





22. 모델들이 거대한 지구를 돌고 있다.

거대한 지구본을 통째로 그랑 팔레에 들여 놓은 듯한 2013 가을/겨울 샤넬 컬렉션에서 모델들이 거대한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 밀라 요보비치, 바네사 파라디, 이네스 드 라 프레상쥬 등 많은 셀러브리티들이 참석한 샤넬 패션쇼는 지구를 탐험하는 듯한 런웨이로 눈길을 끌었다.





23. 2014 가을/겨울, 샤넬 식료품 가게에서 쇼핑

거대한 럭셔리 슈퍼마켓으로 변신한 그랑 팔레에서 펼쳐진 2014 가을/겨울 샤넬 컬렉션. 슈퍼마켓 패션쇼를 위해 약 10만개의 모조 샤넬 제품들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슈퍼마켓에 다녀본 적이 없는 칼 라거펠트가 어린 아이와 같은 상상력을 발휘해 만든 캣워크 무대라고 한다.





24. 심지어 쇼핑 카트도 샤넬이 승인했다.

B급 문화로 치부되던 키치패션이 최근 패션 업계를 주도하며 새로운 장르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패션을 보다 펀(fun)하고 유쾌하게 즐기고 싶은 대중들의 심리를 공략한 컬렉션 혹은 브랜드들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샤넬은 역시 슈퍼마켓 테마의 패션쇼로 키치 리치 트렌드를 선보였다.





25. 허드슨 크로닉, 많은 라거펠트 쇼에 미니 모델로 등장

키드 모델 허드슨 크로닉는 라거펠트가 진행하는 패션쇼에 미니 모델로 많이 등장했다. 심지어 파티장에도 함께 갈 정도로 둘을 나이를 넘어선 절친(?)이다. 남자 모델 브래드 크로닉의 아들인 허드슨은 라거펠트의 대자로 2살 때부터 샤넬 쇼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은 샤넬의 2014 봄/여름 오트 쿠튀르 쇼에서 라거펠트 & 카라 델레바인과 함께 피날레를 장식하고 있다.




26. 2015년, 샤넬은 확장을 계속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샤넬은 아주 대중적인 전자 상거래 사이트 네타포르테닷컴에 주얼리를 론칭하며 뷰티 제품에 이어 패션 제품의 본격적인 온라인 비즈니스에 나섰다. 앞으로 자체적인 플랫폼이 구성되면 본격적인 온라인 비즈니스에 나설 전망이다. 지금 바로 네타포르테에 접속하면 샤넬 주얼리를 살 수 있다. 





패션엔 유재부 기자

kjerry38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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