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칼럼 | 2014-10-06 |
[이주영의 色卽共感] 뉴 블랙으로 떠오른 컬러, RED의 유혹
원초적인 섹슈얼리티의 컬러이자 발렌티노와 크리스티앙 루부탱의 유혹적인 컬러 레드!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 Look at me!' 레드 파워는 당분간 계속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소 부담스러운 튀는 컬러에서 이번 시즌 뉴 블랙으로 부상한 레드! 어느 자리에서든 주인공으로 만들어줄 레드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요?
일상에서는 레드가 의미하는 ‘나를 봐 주세요’라는 강한 메시지를 즐기려면 다소의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특별한 환희의 색상 레드는 특별한 순간을 위한 선택으로 또는 주로 연말 파티의 들뜬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한 드레스 코드로 정해지곤 합니다. 과감한 패션인들 마저도 네일, 헤어피스, 스카프 등의 연출 등 소심한 레드미션을 수행하곤 하는데요. 그런 레드가 최근 유행 컬러로 떠오른 걸 보면 세계의 패션인들의 마음속에 무언가 강한 에너지가 분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에게도 레드는 쉬운 색은 아닙니다. 레드를 어딘가에 더하면 그 옷차림이 캐주얼이건 포멀한 정장이건 간에 어김없이 질문을 받는답니다. “오늘 약속 있으신가 봐요?”
그런 레드가 공식적으로 시즌 트렌드 컬러로 부상하였습니다. 그것도 세트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근 뉴 블랙으로 등장한 레드 열풍의 선두에는 스타군단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안나 윈투어부터 리타 오라와 클레어 데인즈등 스타들은 이번 시즌 레드로 아우라를 더하고 있는데요. 2014 F/W 뉴욕컬렉션부터 2015 S/S 파리컬렉션 런웨이에서 프론트로까지 레드 파워는 여기저기서 목격됩니다.
보통 우리는 레드를 보면 패션 레이블 발렌티노의 불타는 드레스와, 크리스찬 루부텡의 아찔한 레드 솔 스틸레토 힐이 떠오를 것입니다. 레드 드레스에서 우리는 여성의 섹시함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함을 느낄 것이고, 루부텡의 레드 솔은 안데르센의 빨간 구두가 주는 불길함도 잊게 할 만큼 유혹적입니다. 많은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발렌티노의 레드 드레스로 연말 시상식이나 레드 카펫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요. 강렬한 레드 드레스로 대표되는 발렌티노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만든다는 목표 이래 언제나 성공적입니다.
근세 이후 우리는 패션의 색채로 어두운 계열을 선택해 왔습니다. 그러나 올 가을 패션 매장의 신상품을 보면 마치 붉은 피가 흐르는 ‘레드 리버’와 같다고 말 할 정도인데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디자이너 듀오 렉&본의 센슈얼한 진홍색 드레스와 스테이트먼트 백 그리고 발렌티노의 60년대 옵아트 환상곡, 돌체&가바나의 나쁜 기운을 막아 줄듯 한 레드 라이딩 후드 케이프는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레드 파워는 지난 9월 4일부터 뉴욕에서 킥오프되어 런던, 밀라노, 파리로 이어지는 2015 봄/여름 패션위크에서도 키 컬러로 부상했습니다. 심지어 파리 패션 위크의 꼼 데 가르송 컬렉션은 피와 장미를 연상시키는 올 레드 룩을 선보였는데요.
그렇다면 레드는 여성의 색일까요? 역사적으로 보면 레드는 오랫동안 남성의 색이었다고 합니다. 19세기말 이후 무채색에 남성복을 내어 주기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괴테는 레드를 ‘색의 여왕’이 아닌 ‘색의 왕’이라 칭할 정도로 힘과 공격성, 적극성을 나타내는 색이었습니다. 레드를 뜻하는 언어는 남자의 이름에 자주 쓰였고 투우사의 깃발은 소가 색맹임에도 불구하고 레드였으며 이집트 벽화에서도 남성은 붉은 피부를, 여성은 노랑 피부를 갖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레드는 황제의 색이었습니다. 그러니 남성들의 레드 스포츠카에 대한 로망은 오랜 시간 DNA에 각인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레드를 남성의 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데 이는 20세기 초반에 생긴 하늘색과 분홍색이 아동의 성별을 구분하는 영향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구분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수세기에 걸쳐 레드는 최고 특권층의 독점적인 색이었습니다. 광택이 나는 색이나 순수한 색은 불순물을 제거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는 생산에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언제나 극소량이었으니까요. 빨강은 강력한 힘과 권력을 부여한다고 지배 계습은 믿었습니다. 비잔틴 시대 보라색의 비밀 제조법이 사라진 이후로 레드는 황제의 색이었습니다. 레드의 귀족적 의미는 아직도 남아 있는데요. 연말 시상식 입구에는 흔히 레드 카펫이 깔려 있습니다. 이 레드 카펫과 화려한 드레스들이 만날 때 분위가가 고조됨을 느끼셨을 거예요. 여우사냥 역시 왕실의 스포츠였는데요. 이때 레드 재킷을 입었습니다. 바로 이 재킷의 이름이 레드 라이딩 코트(Red riding coat)를 줄인 르뎅고트(Redingotes)랍니다. 실제로 빛나는 레드는 싸게 만들기가 무척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을 레드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또한 레드는 행운의 색, 환희의 색이기도 합니다. 중국인들은 레드를 행운의 색으로 여겨 빨강봉투에 돈을 넣어 주고 잔치를 여는 장소인 음식점의 레드 인테리어는 어디서든 중국 음식점을 상징합니다. 서양에서도 레드는 즐거움을 주는 색 중 하나인데요. 우리는 크리스마스에 빨강색에 포근한 흰털이 장식된 코트를 입은 넉넉한 미소의 산타에게 선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산타 복장이 1930년대에 코카콜라의 광고를 위해 만든 산타 일러스트에서 시작되어 오늘날 전 세계 산타의 이미지가 되었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코카콜라 패키지의 레드와 콜라의 신선한 거품을 나타냈다고 하는 데요. 어쩌면 콜라의 상징 색이 레드가 아니라 녹색이나 보라, 파랑 색이었다면 오늘날과 같은 브랜드 가치 1위의 음료가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레드는 함께하는 색에 따라 다양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요 블랙과 만나면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블랙 슈트의 드라큘라 백작 때문일까요? 지옥 불을 연상시켜서 일까요? 검붉은 노을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레드와 블랙의 만남은 금기를 연상시키며 마수에 빠져들 것만 같습니다. 이러한 레드와 블랙 거기에 아찔한 스틸레토 힐의 만남은 욕망을 분출시키는 여성만의 특권처럼 보여 집니다. 바로 이 하이힐 펌프스의 대표적 이미지가 크리스찬 루부탱의 레드 솔입니다. 빨강 밑창을 소유하고자 루부탱은 이브 생 로랑의 구두 밑창에 레드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으며 이는 법정 다툼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과는 일부 승소, 일부 패소였습니다.
레드는 활력과 풍요로움 때문에 문명이 시작된 이후 가장 파워풀한 상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혈액, 불, 심장을 의미하는 레드가 섹스와 폭력과 자주 연관되는 것은 당연한 지도 모릅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전쟁터에 나갈 때 루비 깃발을 가져갔다고 합니다. 붉은 행성인 화성은 '태양의 신'이라는 의미에서 유래했습니다. 성경의 구약성서에서 레드는 지옥과 악마의 불타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색이었고 세상이 죄를 알게 한 계기가 된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역시 레드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 가슴을 드러낸 드레스가 유행하던 때 유두를 빨갛게 칠하기도 했으며 또한 주홍 글씨, 홍등가라는 용어는 레드를 아주 애타게 하는 금기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레드는 우리가 입을 수 있는 가장 섹시한 색이 된 것 아닐까요?
레드가 분홍과 만나면 화려함이 더해집니다. 그것은 물질적이고 세속적이면서 밝고 가볍습니다. MTV 시절 마돈나의 무대인 머터리얼 걸(Material Girl, 된장녀)의 전체 이미지 컬러 연출에서도 보면 그 느낌을 아실 수 있습니다. 레드를 보라색이나 분홍색과 매치시키면 세련된 유혹을 풍길 수 있을 겁니다.
올 가을 시즌 강하게 부상하고 있는 스칼렛 컬러는 전통적으로 빨강머리가 흔했던 아일랜드의 전통가문을 스칼렛(Scarlett)을 지칭하기도 하고 ‘길들이지 않은’ 이라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여성들을 더욱 생명력 있고 정열적으로 보이게 하는 프랑스어로 빨강을 뜻하는 ‘루즈 (rouge)'는 립스틱과 동의어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우먼파워가 강해지는 현 시점에 레드 유행은 당연한 수순일지 모릅니다. 아직 레드를 입기 부담이 되면 레드가 갖고 있는 다양한 이미지를 이용해 보세요. 레드는 젊음의 상징인 데님과 매치 되었을 때 생동감이 배가 되고 베이지나 카멜과 매치되면 고급스러운 느낌이 빛을 발합니다. 예술적인 감성의 세련된 유혹을 즐기고 싶다면 레드와 핑크 또는 퍼플을, 섹시한 파워게임에서 승자가 되고 싶다면 레드와 블랙을,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 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면 빨강 드레스를 선택하세요. 아주 보수적인 측면에서 볼 때 클래식한 레드 립스틱을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러나 잊지 마세요. 빨강 색 옷을 입으면 사람들로 부터의 특별한 시선을 받을 테니까요.
글 이주영 편집위원/ 동덕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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